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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
상상과 여운창작 이야기

유리창의 방파제

야간 청소를 하는 수희는 멀리 이사하는 친구를 버스터미널로 부른다. 출발 전, 대합실 끝 유리창에서 잠깐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있다.


수희는 자정 버스가 떠나기 전까지 대합실 끝 창틀을 비워 두었다. 걸레와 분무기는 의자 밑으로 밀었다. 오늘 밤 다른 도시로 이사하는 주원에게, 출발 전에 십 분만 일찍 와 달라고 해 두었다.

그 유리창의 비밀을 안 것은 지난달이었다. 청소하다 입김 위에 그린 달팽이 한 마리가 창틀로 내려왔다. 수희는 손톱보다 작은 더듬이가 자기 손가락을 더듬는 동안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그 뒤로 확인한 것은 간단했다. 김 서린 유리에 손가락으로 그린 것들은 창틀 안에서만 작은 입체가 되었다. 유리가 마르면 함께 사라졌다. 수희는 쉬는 시간마다 잠깐씩 화분이나 귤을 그렸다.

주원은 출발 십칠 분 전에 왔다. 여행 가방의 바퀴 하나가 돌 때마다 딱딱 소리를 냈다. 수희가 가방을 받아 벽에 붙이자 주원은 편의점 봉투를 내밀었다. 안에는 김밥 두 줄이 있었다.

“저녁 안 먹었지?” 수희는 봉투를 받았다. 주원이 이사한다는 것도 다른 친구가 올린 상자 사진을 보고 알았다. 그날부터 두 사람의 메시지는 필요한 말만 담고 짧아졌다.

주원은 비어 있는 창틀을 보았다. “보여 줄 게 뭐야?” 수희는 먼저 창에 길게 숨을 불었다. 뿌옇게 번진 곳에 가로줄을 긋고, 그 아래 짧은 곡선들을 이어 그렸다.

창틀에 손바닥 두 개만 한 바다가 찼다. 물은 페인트가 벗겨진 모서리 앞에서 멈췄다. 수희는 길쭉한 방파제를 보태고 그 끝에 등대를 세웠다. 빨간 지붕을 그릴 수 없어서 손가락으로 꼭대기만 짚었다.

주원이 무릎을 굽혔다. 작은 파도가 방파제에 부딪쳤다. 대합실 텔레비전 소리에 묻힐 만큼 가느다란 물소리가 났다. 주원은 가방 손잡이를 놓고 창틀과 눈높이를 맞췄다.

“거기네.” 주원이 말했다. 두 사람이 지난해 가려고 했던 바닷가였다. 인터넷에서 본 방파제 사진을 저장해 놓고, 버스 시간표까지 찾아봤다. 날짜는 세 번 바뀌었고 끝내 아무 날도 되지 못했다.

한 번은 수희의 근무가 바뀌었고, 한 번은 주원이 이틀 내내 잤다. 마지막에는 비가 온다는 예보 때문에 미뤘다. 실제로 그날 비가 왔는지는 둘 다 기억하지 못했다.

수희는 ‘이렇게라도 데려가 주려고’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대신 김밥 봉투를 열었다. 주원은 바다를 본 채로 말했다. “일자리 정해졌을 때 바로 얘기했어야 했는데.”

“왜 안 했어?” 수희가 물었다. 주원은 한동안 등대를 보았다. “말하면 내가 너무 신나 보일 것 같았어. 너는 여기서 계속 밤에 일하는데. 그래서 미뤘더니 말하기가 더 어려워졌어.”

수희는 김밥 비닐의 끝을 가늘게 말았다. “나도 네가 말하면 일단 잘됐다고 했을 거야. 그다음에 혼자 서운해했겠지. 그래도 상자 사진으로 아는 건 싫더라.”

“지금 말해도 돼? 나 거기 가는 거 좋아.” 주원이 말했다. 수희는 방파제 끝을 조금 늘였다. “응. 그건 알고 싶었어.” 손가락이 지나간 자리에 작은 돌들이 더 놓였다.

출발 오 분 전이라는 안내가 나왔다. 주원은 일어서지 않고 유리에 입김을 보탰다. 그러고는 방파제 옆에 네모와 동그라미를 그렸다. 한쪽 다리가 짧은 의자가 창틀에 놓였다.

“이건 네가 다시 그려.” 주원이 웃었다. 수희는 짧은 다리를 손끝으로 이어 주었다. 의자가 똑바로 섰다. 두 사람은 김밥을 한 조각씩 먹고, 나란히 이마를 유리에 대고 앉아 작은 의자를 보았다.

유리 가장자리부터 김이 걷혔다. 먼바다 쪽 물이 조금씩 낮아졌다. 주원이 다시 입김을 불려 하자 수희가 고개를 저었다. “이제 가야지. 가방 바퀴도 느린데.”

주원은 가방을 끌다가 돌아섰다. “근무표 나오면 보내 줘.” 수희는 남은 김밥을 봉투에 넣어 주었다. “너도. 갈 수 있는 날 말고, 가고 싶은 날부터 표시해서.”

“비가 와도?” 주원이 물었다. 수희는 잠깐 생각했다. “비 오면 분식집에서 바다 보자. 거기 창가 자리 있는지 네가 알아봐.” 주원은 이번에는 휴대전화에 바로 적었다.

승강장으로 향하는 바퀴 소리가 멀어졌다. 수희는 창 앞에 남아 주원이 버스에 오르는 것을 보았다. 주원은 자리에 앉자마자 창 쪽으로 얼굴을 붙이고, 양손으로 눈 옆을 가려 안을 들여다봤다.

수희가 손을 흔들었을 때 마지막 물결이 마른 유리로 돌아갔다. 버스가 움직였다. 창틀에는 방파제도 의자도 없었고, 벗겨진 흰 페인트와 수희가 처음부터 닦지 않았던 물자국만 남았다.

수희는 의자 밑에서 걸레를 꺼냈다. 창틀부터 닦고, 유리를 넓게 훔쳤다. 두 사람이 이마를 대고 작은 바다를 들여다보던 자리는 가장 나중에 닦았다.

이야기 끝

Rantap 창작 이야기 · AI를 활용해 작성하고 검토했습니다. 등장인물과 사건은 허구입니다.


읽고 나서

유리창의 바다는 사라지지만, 두 사람이 꺼내 놓은 서운함과 다시 만나자는 말은 남습니다. 수희가 이마를 댔던 자리를 마지막에 닦는 장면은, 붙잡을 수 없는 순간을 조금 더 간직하려는 마음으로도 읽힙니다.

잠깐 함께한 시간이 오래 남아, 나중에도 떠오르는 장소나 물건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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