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에 들어온 부엌
중고 주방용품점에서 일을 시작한 은재는 창고 바닥에 붙은 테이프가 궁금하다. 반듯하지도, 나란하지도 않은 선 사이로 오후의 손님이 들어온다.
중고 주방용품점에서 일한 지 사흘째, 은재는 창고 바닥의 파란 테이프에 빗자루가 걸렸다. 선은 선반을 따라가지 않고 바닥 한가운데서 두 번 꺾였다. 한쪽에는 연필로 ‘78’이라고 적혀 있었다.
떨어진 끝을 집어 들자 사장이 말했다. “그건 오후에 쓸 거야. 손님 가게 복도를 그려 놨어.” 은재는 끝을 다시 눌렀다. 테이프가 둘러싼 빈 바닥이 갑자기 좁아 보였다.
“물건을 가져갔다가 안 들어가면 곤란하니까요?” “그것도 있고. 오늘 손님은 카트가 필요하거든. 날마다 드나들 길을 보는 거지.” 사장은 바닥의 숫자 옆에 줄자를 내려놓았다.
두 시에 반찬 가게 주인이 종이와 냄비를 들고 왔다. 종이에는 부엌 평면도가 있었다. 냄비는 뚜껑까지 끈으로 묶여 있었다. “제일 큰 걸 가져오라셔서요. 씻어서 왔어요.”
손님이 사려는 카트는 위에 판이 있고 아래에 선반 두 개가 달린 것이었다. 매일 아침 큰 냄비를 부엌에서 앞쪽 작업실로 옮기는데, 지금은 두 사람이 양쪽 손잡이를 잡고 나른다고 했다.
은재는 카트 바퀴에 묶인 가격표를 풀었다. 사장은 평면도와 테이프를 번갈아 보며 선 하나를 옆으로 옮겼다. 처음 재어 온 치수에서 벽에 붙은 소화기 폭이 빠져 있었다.
손님은 창고 구석을 가리켰다. “이쪽이 우리 싱크대예요.” 그러더니 빈 벽 앞에서 몸을 비켜섰다. 은재도 따라서 옆으로 물러났다. 아직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았는데 길을 내준 셈이었다.
카트를 선 안쪽에 놓자 사장이 은재에게 밀어 보라고 했다. 문에 해당하는 틈은 무사히 지났다. 그러나 복도가 꺾이는 곳에서 앞바퀴를 돌리자 뒤쪽 모서리가 파란 선 밖으로 나갔다.
은재는 뒤로 빼서 다른 각도로 시도했다. 이번에는 앞쪽이 소화기 자리를 밟았다. “실제로는 벽에 부딪힌 거예요.” 사장이 말했다. 은재는 발끝을 선 뒤로 거두고 카트를 다시 빼냈다.
손님은 한동안 바퀴를 내려다보았다. “문 폭만 재면 되는 줄 알았어요.” 사장은 조금 좁은 카트를 가져왔다. 판에는 둥근 얼룩이 있었지만 바퀴는 네 개 모두 부드럽게 돌았다.
좁은 카트는 모퉁이를 돌아 나왔다. 은재가 가격표를 집으려 하자 사장이 냄비를 가리켰다. 손님이 끈을 풀었다. 빈 냄비를 판 위에 올리자 양쪽 손잡이가 카트 밖으로 튀어나왔다.
은재는 방금 지나온 길을 다시 밀었다. 이번에는 손님이 몸을 숙여 냄비 손잡이를 보았다. 소화기 자리와 간격이 손가락 하나만큼 남았다. “아침마다 여기서 조심해야겠네요.”
은재는 냄비를 옆으로 돌려 보았다. 손잡이가 카트의 앞뒤를 향했다. 손님이 종이를 내려놓고 직접 밀었다. 모퉁이 앞에서 한 번 멈추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선을 건드리지 않았다.
“실제 벽에서도 해 봐야겠죠?” 손님이 물었다.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짝이 열린 자리까지 확인하고요. 내일 가져가서 같이 봅시다.” 좁은 카트의 가격표가 계산대로 옮겨졌다.
다음 날 배달에 따라간 은재는 반찬 가게 뒷문에서 멈췄다. 창고에서 밟았던 모퉁이가 눈앞에 있었다. 다만 파란 선 대신 회색 벽이, 연필 숫자 대신 빨간 소화기가 서 있었다.
사장은 카트가 없는 상태로 먼저 문을 끝까지 열어 고정했다. 은재는 문짝과 소화기 사이를 재었다. 손님이 보낸 치수와 같았다. 카트만 한 번 왕복한 뒤 냄비를 올렸다.
이번에도 냄비에 음식은 없었다. 손님이 손잡이를 앞뒤로 놓고 카트를 밀었다. 은재는 모퉁이 건너편에 서서 봤다. 바퀴가 돌아가고 냄비가 뒤따랐다. 벽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작업실에 도착한 손님은 카트 위 냄비를 열었다. 안에는 카트 아래 선반에 쓸 고무 매트가 들어 있었다. “어제 치수 받아 가서 잘랐어요.” 말아 둔 매트를 펴자 선반에 들어맞았다.
돌아오는 차에서 은재는 자기 휴대전화의 창고 사진을 보았다. 어제까지는 바닥에 선 몇 개뿐이었는데, 이제는 싱크대와 문짝, 문 옆에 쌓인 빈 반찬 통의 자리가 보였다.
가게에 돌아와 은재는 테이프를 떼었다. 사장은 다음 손님의 치수를 아직 받지 못했다며 바닥을 비워 두라고 했다. 긴 줄을 한꺼번에 당기자 테이프가 둥글게 말려 손목에 붙었다.
마지막으로 ‘78’이 적힌 조각을 떼자 그 아래 먼지 없는 네모가 남았다. 은재는 걸레로 바닥을 닦고, 손님에게 건넬 치수 종이를 한 장 복사했다. 문 폭 아래에 빈칸을 더 만들었다.
새 칸에는 ‘모퉁이’와 ‘돌출된 물건’을 적었다. 잠깐 생각한 뒤 맨 아래에 ‘카트에 올릴 것’도 넣었다. 복사기 옆에는 어제 큰 냄비를 묶었던 끈이 남아 있어, 종이 묶음을 그것으로 묶었다.
이야기 끝
Rantap 창작 이야기 · AI를 활용해 작성하고 검토했습니다. 등장인물과 사건은 허구입니다.
읽고 나서
은재는 치수 종이에 문 폭뿐 아니라 모퉁이와 카트에 올릴 물건을 적을 칸도 더합니다. 파란 선 안에서 손님의 움직임을 따라가 본 일이, 물건의 크기와 함께 그 물건을 쓰는 하루까지 보게 한 셈입니다.
어떤 물건이나 공간을 실제로 써 본 뒤에야 알아차린 불편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