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rantap.
KO
선택과 대가창작 이야기

마지막 장면의 자리

동네 극단의 공연을 앞두고, 서연에게 다른 도시로 갈 기회가 생긴다. 오래 연습한 역할과 새로 해 보고 싶은 일의 날짜가 겹친다.


월요일 저녁, 서연은 연습실 바닥에 붙인 노란 테이프 위에 섰다. 동네 극단이 다음 주 토요일에 올릴 연극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의자에서 일어나 다섯 걸음을 걷고, 빈 식탁 앞에서 돌아보는 역할이었다.

세 달 동안 그 다섯 걸음은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에는 너무 빨랐고, 그다음에는 손이 남았다. 이제는 돌아서기 직전, 뒤에 앉은 동료의 숨소리를 기다릴 수 있었다. 연출을 맡은 혜진이 처음으로 거기서 멈추지 않고 끝까지 보았다.

집에 돌아가니 오후에 놓친 전화의 문자가 와 있었다. 전에 지원한 순회공연 조명팀에서 열흘 동안 보조 실습을 할 사람을 찾았다. 출발은 이번 주 목요일, 마지막 현장을 마치는 날은 동네 공연 날이었다.

조명을 배워 보고 싶다는 말은 오래 했다. 공연장 위쪽에서 불이 켜질 때마다 어느 손이 그 장면을 바꾸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신청서를 낼 때는 일정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서연은 답장을 쓰지 않고 달력의 두 날짜를 번갈아 눌렀다.

다음 날 점심까지 답을 달라는 연락이 왔다. 서연은 혜진에게 전화했다. “가면 안 되는 거지?” 혜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못 가게 할 수는 없지. 대신 가기로 하면 네 역할은 다른 사람이 맡아야 해.”

“목소리를 미리 녹음하고, 마지막 장면만 바꾸면 안 될까?” 서연이 물었다. 혜진은 식탁 맞은편 사람이 서연을 보고 대답하는 장면도 있다고 했다. 서연은 자기 대사보다 남의 대사를 더 적게 기억하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대본을 펼쳤다. 여백에는 동료들이 움직이는 방향이 적혀 있었다. 자신이 비켜야 의자가 나오고, 자신이 기다려야 다른 사람이 앉았다. 마지막 다섯 걸음만 떼어 갈 수는 없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십 분 전, 서연은 조명팀에 가겠다고 답했다. 그런 다음 극단 단체 대화방에 이번 공연에 서지 못한다고 썼다. 사정 설명 뒤에 붙인 ‘괜찮다면’을 지웠다. 이미 가겠다고 답한 뒤였다.

답은 저녁에 모였다. 한 사람은 짧게 알겠다고 했고, 다른 사람은 공연 날까지 함께할 줄 알았다고 했다. 무대 뒤 일을 맡던 세진이 대본을 들고 연습실에 왔다. 혜진은 서연에게 수요일까지 역할을 넘겨 달라고 했다.

수요일, 서연은 세진에게 접힌 대본을 주었다. 틀리기 쉬운 순서에는 작은 별이 그려져 있었다. 세진은 고맙다고 하더니 별 두 개 옆에 물음표를 적었다. “여기는 왜 바로 안 일어나?”

서연은 지난주에 찾은 기다림을 설명했다. 세진은 그 자리를 두 번 해 보고 조금 더 빨리 일어났다. 서연이 손을 들자 혜진이 말했다. “한 번 끝까지 보자.” 서연은 손을 무릎 위에 놓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세진은 식탁 앞까지 네 걸음으로 갔다. 보폭이 서연보다 컸다. 테이프 위를 지나친 발을 보고 서연이 웃으며 말했다. “다섯 걸음인데.” 세진은 바닥을 내려다보다가 물었다. “꼭 다섯 번이어야 해?”

혜진은 노란 테이프를 조금 옆으로 옮겼다. 의자도 그만큼 돌렸다. 장면은 다시 시작됐고, 이번에는 아무도 부딪치지 않았다. 서연은 의자 밑으로 떨어진 테이프 조각을 주워 손가락에 감았다.

연습이 끝나자 예매 안내에 들어갈 출연자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서연은 자기 이름이 빠진 종이를 넘겨주었다. 단체 사진을 새로 찍는 동안 휴대전화를 잡아 주었다. 화면 안의 여덟 명은 빈자리를 만들지 않고 섰다.

세진이 대본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내일 아침 기차지? 잘 다녀와.”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는 길에는 어느 장면이 잘됐는지 대화방에 쓰지 않았다. 잘됐다고 말하고 싶은 장면이 있었고, 아직은 쓰기가 싫었다.

목요일 새벽, 기차에서 서연은 대본을 꺼내려다가 손을 멈췄다. 가방 안에는 조명팀이 보내 준 작업 일정만 있었다. 맨 위에 자신의 이름이 있었고, 담당 칸에는 ‘자재 정리 보조’라고 적혀 있었다.

처음 사흘은 접힌 가방을 펴고, 상자의 번호를 맞추고, 불러 주는 물건을 찾는 일이 많았다. 객석 불이 꺼지면 서연은 무대가 아니라 통로를 지켰다. 불빛이 바뀌는 순간을 놓치기도 했다. 그쪽을 보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둘째 주 금요일 밤, 세진에게서 마지막 장면의 순서를 묻는 연락이 왔다. 서연은 긴 답을 쓰다가 지웠다. 대본의 해당 부분을 짚어 주고, 지금 연습하는 동료와 맞춰 보라고 했다. 자신이 하던 방식까지 보내지는 않았다.

동네 공연이 있는 토요일, 조명팀은 다음 도시로 장비를 옮겼다. 극단 대화방에는 객석 문을 열었다는 알림이 올라왔다. 서연은 차량에 실을 상자를 세다가 다시 하나부터 셌다. 그날은 자꾸 숫자를 놓쳤다.

공연이 끝난 뒤 사진이 왔다. 세진은 식탁 옆에 서 있었고 다른 배우들이 그쪽을 보고 있었다. 서연이 골랐던 머그잔은 창가로 옮겨져 있었다. 자기 역할을 맡은 사람이 아니라, 그 장면에 사는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서연은 사진을 크게 했다가 작게 했다. 혜진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보냈다. 답장에는 오늘 와 줬으면 좋았겠다는 말이 있었다. 서연은 한참 뒤 ‘나도 보고 싶었어’라고 썼다. 잘 끝나서 다행이라는 말은 다음 줄에 적었다.

늦은 저녁, 서연은 공연장 뒤편에서 빈 장비 가방을 접었다. 주머니에서 수요일에 감아 둔 테이프 조각이 나왔다. 며칠 동안 손의 먼지가 붙어 노란색이 탁해져 있었다. 서연은 그것을 펼치지 않고 쓰레기통에 넣었다.

팀원이 가방을 다 접었으면 상자를 같이 옮기자고 불렀다. 서연은 휴대전화를 가방 바깥 주머니에 넣었다. 화면은 아래를 향했다. 극단에서 보내온 사진은 지우지 않았고, 다시 보는 것은 숙소에 돌아가서 하기로 했다.

상자 양쪽 손잡이를 잡으니 맞은편 사람이 하나, 둘을 셌다. 서연은 셋에 맞춰 일어났다. 문턱 앞에서는 그 사람이 먼저 멈췄고, 서연도 멈췄다. 둘은 손잡이를 고쳐 잡고 상자를 함께 넘겼다.

이야기 끝

Rantap 창작 이야기 · AI를 활용해 작성하고 검토했습니다. 등장인물과 사건은 허구입니다.


읽고 나서

서연이 새 기회를 택한 뒤에도, 자신이 빠진 공연을 향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진은 간직하고 테이프는 버리는 모습에서, 떠난 자리를 기억하는 일과 그곳을 예전 모습대로 붙잡는 일 사이의 차이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기회를 택하며 남겨 두었던 자리나 역할이 있나요?

이 글 공유하기